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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엔 또 어떤 범주가 깨질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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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엔 또 어떤 범주가 깨질까?

Everly. 2022. 6. 21. 20:37

“틀을 깨자.”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억압이랄까? 내 속에 있는 내면의 비판자가 이따금씩 나의 행동을 통제하고, 나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내 스스로가 참 갑갑하게 느껴진다.

계획대로 살아야 해, 내가 세운 이 길로만 가야 해, 이 사람처럼 살아야지 등등.

내가 생각하기에 ‘정상인 것’과 ‘멋진 것’에 나는 나 자신을 끼워맞추려고 한 적이 많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선천적인 영향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오늘 드디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책을 다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일종의 센세이션을 느꼈다.

내가 갖고 있는 세계가 파괴되는 느낌.

항상 뭔가를 분류하고자 하는—이를테면 이건 좋은 것, 저건 나쁜 것— 나의 습성이 쓸모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구분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고, 무엇이 좋은 것이고 뭐가 나쁜 것이고. 어떤 기준인데, 그게?

심지어 분류하는 대상인 ‘사람’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나조차도 항상 변하니까.

 

기존의 틀과 체계를 깨면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리. 그리고 모든 건 변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자. 인간은 누구나 곧잘 틀린다는 사실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 룰루 밀러 지음, 곰출판(2022)

2022.06.17 완독

 

이 책은 나와 친한 언니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SF 장르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서도, 과학서도 그닥 안 좋아하고, 소설은 10대 시절엔 많이 읽었지만 요 몇 년 동안에는 소설도 딱히 손이 안 갔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봤지만, 언니가 내용을 미리 알려주면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알려줄 수 없다고,, 그만큼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대에 부풀어 이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뭐가 재밌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과학과 철학을 짬뽕해놓은 소설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 즈음이 되어서야 좀 재밌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세계의 암묵적인 룰을 하나하나씩 반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해서 한번 더 놀랐다. 이 책은 저자인 룰루 밀러라는 여성 과학 기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라는 전 스탠퍼드 대학 총장이자, 동물학 분야(특히 어류 분류)의 교수이자 권위자로 명망이 높은 사람의 회고록을 읽으며 그의 일생을 탐구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견해를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프로필

 

앞에서도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을 짧게 썼지만, 책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에는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세계가 깨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가 보여주듯이.

 


이 책의 줄거리 & 느낀 점

이 책은 개인적으로 내용을 미리 알고 읽으면 책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반전매력을 느끼기 어렵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내용을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스포주의!)

 

저자는 데이비드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의 생애가 ‘자신이 찾고자 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처음엔 존경하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읽어나간다. 저자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희망이 필요한 절망적인 순간에,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꿋꿋하게 해낼 수 있는가?

 

그가 탐구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라는 사람은 앞서 말했듯, 전 스탠퍼드 대학 총장이자 어류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분류”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꽃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물고기(어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19세기였기 때문에 물고기를 분류하는 작업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물고기도 많았기에, 그는 이 세상의 물고기를 모조리 찾아내기 시작했고, 여기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즉, 그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고기들’ 속에서 ‘이름을 붙이는 일(분류)’을 시작했다.

 

이러한 작업은 30년 동안 진행되었고,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스탠퍼드대의 총장이 되었다. 아예 한 건물을 어류 전시실로 쓸 정도였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면서, 전시해 둔 물고기 표본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깨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수십년 동안 해온 자신의 일이 수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절망에 빠질 것이고, 다시 해볼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지진 직후 그가 취한 행동은 “물고기의 표면에 이름표를 꿰맸다.” 물고기 표본이 깨지면서 그 안에 있던 물고기 사체와 이름표가 매치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

 

바로 여기서! 저자는 궁금해진 것이다. 절망이 가득한 순간에서, 어떻게 금방 일어서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어떤 생각을 갖고 살길래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갈 생각을 했던 것일까?

 


데이비드의 회고록을 읽으며, 저자는 그가 갖고 있던 사고방식이 바로 ‘자기 기만’임을 알게 되었다.

데이비드는 “운명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 라는 메세지를 마음 깊숙이 새기면서 살아갔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기만’은 자신을 “약간”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정신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자기기만은 사실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고 한다. 막연하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가 낙관적일거라 믿으면 심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특히 자기계발서나 자기계발 유튜버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딱히 데이비드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단, 자기 긍정감이 넘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것이 커서(이건 내가 아직 20대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살았던 덕분인지, 그는 많은 것을 이뤘다. 연구를 인정받았으며, 자신의 말을 믿는 추종자들도 생겼다.

데이비드의 잘못은 바로 그가 너무 심각할 정도의 자기기만에 빠져, 자신이 남보다 우월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우월하므로, 자신처럼 우월한 존재만 번식을 해야 한다는 우생학자가 되어버렸다.

 

그는 “호의와 자선은 인간을 퇴화하게 만든다.” 라고 하였고, “장애가 있거나, 빈곤하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게으름뱅이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자들은 몰살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그는 ‘물고기’를 분류하는 것에서 넘어서서, ‘인간’ 까지 분류했다. 우월한 자와 / 그렇지 않은 자들.

그리고 우월하지 않은 자들은 쓸모없는 사람이며 안 좋은 유전형질이 유전되기 때문에 자손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화법’을 만들자고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암암리에 강제 불임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은 당연히 이런 우생학 주장이 일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다양성’이 새로운 변이형질을 만들어내기 때문인데, 원래 특정 집단에서만 번식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집단끼리 번식하는 것이 인류 발전에 더 도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외부 형질’에만 관심을 갖지만,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결국엔 어떤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다.

 

사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뜨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美)의 기준이라거나, 좋은 직업의 기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의 기준 등등.

인간은 대체로 외부의 것(외모, 능력, 지능, 돈 등)에만 관심을 갖고, 이를 쫓아 살아가지만

그 아래 “우리 내면이 갖고있는 것들”(잠재력, 신념, 생각, 창의성 등)은 누구나 다르고, 이는 유전적인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책에서 나오는 '민들레 이론'

 

저자는 책에 막바지에 이르러 깨닫게 된다. “내가 이런 악당을 존경하려 했었다니..!”

겉으로는 멋진 스탠퍼드대 교수, 동물학/생물학의 권위자. 좋은 타이틀은 많았을지라도 그의 신념은 엉터리 그 자체였다.

 

자연계에서 인간이 가장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고, 나머지 동물은 하등하다고 믿었던 데이비드.

인간 중에서도 우월한 인간이 있고, 나머지는 몰살시켜 번식을 막아야 한다고 믿었던 데이비드.

자신이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어류도감을 만들어 ‘어류’라는 종을 분류한 데이비드.

 

하지만 이는 모두 틀린 신념이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물이 많고(기억력, 팀워크, 패턴인식 능력 등), 부모가 가난하거나 능력이 없거나 정신병이 있어도 자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더 엄청난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저 물 속에 살고, 비늘로 덮여있다고 해서 모두 ‘어류’ 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포유류, 어떤 것은 양서류였다. ‘어류’는 없었다.

⇒ 즉, 실제 자연세계가 인간이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저 ‘직관’에 따라 제멋대로 생각해버리는 것의 한 예시였던 셈이다.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 별이 우주를 돌고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그냥 물 속에 사는 것들을 모두 ‘어류’ 로 묶어버린 셈.

 


그래서 저자는 주장한다.

‘물고기’ 라는 단어를 포기하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의미이다. 붙인 이름이 어떤 느낌이 드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사실 그런 존재가 아닌데도 이름으로 인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예’ 라고 지칭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노예’ 라고 불리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가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가 아인슈타인보다 똑똑한 과학자라고 해도 ‘노예’니까 무시당한다.

이렇게 이름붙이는 행위에 의해 우리의 사고는 제한된다. 그래서 저자는 ‘물고기’라는 ‘잘못된 이름’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 책 속에서(p.95)

 

여기서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랬던 거였구나!

 

이 세상에 만들어진 여러 이름들, 범주들. 그것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면 당연히 왜 그것들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전혀 신경쓰거나,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언니가 했던 말처럼, “사람은 곧잘 틀리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범주들은 부숴질 것이다.

지금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 믿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상상도 못했던 기회가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그래왔듯이!

 


맺으며

‘데미안’에서도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선과 악은 동일한 것” 이라는.

우리는 너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 이 세상엔 좋은 것/ 나쁜 것이 있고, 선과 악은 다르고, 성장과 부패는 다른 거라는.

 

하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혼돈”이다.

이 혼돈 속에는 선 & 악, 삶 & 죽음, 성장 & 부패가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하나는 좋은 것, 하나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바라보는 건 우리의 직관일 뿐이다. 지금은 좋다고 믿는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쁘다고 믿는 게 나쁜 게 아닐 수 있다.

이것을 명료하게 보려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라.

 

라고 저자는 말한다.

 

참고로, 추앙받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명성이 이 작품으로 인해 거품이었단 것이 밝혀지고, 그의 이름이 붙은 스탠퍼드대, 인디아나대학 건물명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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