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상하게도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에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 해도 속으로는 이게 무엇이 문제지? 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다시 말해서 일상에 ‘감성’이 너무 부족했다. 맨날 자기계발서나 데이터 관련된 딱딱한 책만 보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자주 한 게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였었나. 찾아보니 올해 들어 읽은 소설은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8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인기 있다는 소설책 2권을 바로 주문해버렸다. 그 2권은 바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노르웨이의 숲’ 이었다. 이번 서평은 그 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라는 책에 대한 내용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2023)
이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는 최은영 작가님의 신작으로, 초판본을 구매했다. 내가 소설에 관심을 가진 지 너무 오래되어 사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유명한 작가님이라고 한다. 책을 구매하기 전 미리보기로 책을 몇 페이지 먼저 봤었는데 너무 재밌어 보여서 바로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이 책은 2주도 안 되어 다 읽어버린 소설이다.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좋았고, 읽을수록 내용에 빠져들어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읽고 퇴근 후에도 책을 펴서 읽고 싶을 정도였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몇몇 단편을 읽을 때에는 눈물이 펑펑 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감명깊게 읽은 책. (덕분에 실종되었던 내 감성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더 진실하기를, 더 치열하기를, 더 용기 있기를
이 문장이 바로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세지이다.
보통 한국소설을 생각하면 연인 간의 사랑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 책에도 사랑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랑이 중심 소재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이다.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이 소설집의 첫번째 단편으로 수록되어 있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대해서만 짧게 감상평을 남겨보려 한다. 여기서는 2009년도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는 희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은행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뒤늦게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그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여자 강사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희원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어쩌면 늦깎이 대학생이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잘 녹아들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었고, 항상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수업만 듣고 집에 가곤 했다. 그러다 수업 때 우연히 생리가 새고, 강사의 개인적인 호의 덕분에 그녀와 약간의 친분을 쌓게 된다. 처음 말을 나눴던 사람이지만 강사는 자신의 집까지 초대해 입을 옷을 빌려준다.
희원이 들었던 수업은 각자 에세이를 정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내용에 대해 학우들끼리 각자 의견을 나누는 수업으로, 수동적으로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닌 꽤 능동적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에세이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면 대부분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 그 때의 이야기를 묘사하듯 글을 쓸 것이다. 거기엔 반드시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묘사를 한다는 것은 설명문이지 에세이는 아니다.
주인공 희원은 자신이 용산에 살았을 때의 통근길을 묘사한 에세이를 발표한다. 자신의 눈에 보이던 것들, 소리, 냄새에 대해 묘사하였고, 통근길의 풍경, 그리고 그 길에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어버린 건물들, 비어버린 상가들.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고.
이 에세이엔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풍경에 대해 나와 있지만, 마지막으로 길에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선 희원의 관점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학우들은 희원의 발표를 듣고 이 ‘사라진 것들’에 대해 자기들끼리 ‘용산 시위’ 떄문이 아니냐고 논쟁을 벌였으나 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사는 말한다.
이 구절을 읽는데 한참을 다시 읽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글’ 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주장, 자신의 의견, 자신의 입장’이 있어야 하는 글이다.
나도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혼자서만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정리하곤 하는 편이지만. 이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특히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에는 최대한 사실 위주로 전달하고, 설명 위주로 글을 써서 올리려고 했었다. 그렇게 한 데에는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고 또 대부분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굳이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알겠다. 그 사람 나름의 특색이 그 사람 특유의 매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나도 앞으로는 나만의 생각을 담은 글을 자주 쓰고 공개하리라 다짐했다.
이 내용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전부 ‘자신의 이야기(말)’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만나봤지만,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냥 똑같은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인데도 다르게 느껴지게 된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과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러면서 공감능력을 키워가는 것일까..) 그래서 나도 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나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전과 다른 색다른 시도는 항상 즐거운 것 같다. 추천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책 속 구절 하나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친다. :)
글은 글일 뿐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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