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s Ever, Data Chronicles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을 얻으려면, 때로는 나쁜 효율이 필요하다 - 하루키 달리기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본문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을 얻으려면, 때로는 나쁜 효율이 필요하다 - 하루키 달리기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Everly. 2024. 7. 14. 07:56진짜 오랫만에 블로그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번 2024년 상반기 동안은 블로그에 잘 들어오지 못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따로 포스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상반기 동안에는 모종의 이유로 번아웃이 심하게 왔어서 블로그뿐만 아니라 책 읽는 것도 이전처럼 많이 읽지는 못했다. 지금은 다행히 다시 의욕이 생겨서 예전보다는 블로그에 조금 더 자주 들어오고자 한다.
오늘부터는 이전에 읽었던 책 리뷰를 하나씩 올려보려고 한다. 첫번째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2009)
3월 초에 읽기 시작해서 2주 정도만에 다 읽은 책. 가볍게 읽기 좋은, '달리기'를 주제로 한 하루키의 에세이이다.
새삼 2024년의 겨울이 생각난다. 러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 내의 풍경이 멋진 공원을 돌아니며 걷는 게 전부였다. 내게 있어 뛰는 것은 너무 힘든 영역이었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년 가을(10월 말)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나에겐 운동=힘든 것이었고, 꾸준히 헬스장 가는 것도 힘들어했으며, 무엇보다도.. 불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 편식쟁이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최소 4번은 운동하고, 식단도 신경 써서 먹고 있다. (내가 봐도 참 신기한 발전이다.)
암튼, 나는 걷는 건 좋아하지만 러닝은 진짜 싫었다. 뛰면서 숨이 차는 것도 싫고.. 아무래도 타고나길 약한 체력으로 태어나서 더 그런 것일지도. 근데, 자주 걷다 보니 하나씩 운동용품을 장만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올해 초에 읽었던 ‘사는 이유’ 에서 저자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강력 추천했던 책이 바로 하루키의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
책을 읽으면서는 사실 진득하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읽고 있으면 달리러 나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나는 러닝화도 사고, 이 책을 봄 무렵에 읽었기에 봄맞이 바람막이와 바지도 하나 샀다. 겨울에 러닝할 때는 너무 추워서 러닝할 엄두도 잘 못 냈는데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공원에 가면 러닝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하나 더 바뀐 점은 이제 더 이상 러닝할 때 짐을 들고 뛰지 않는단 거! 생각해보니 지하철역에 물품보관소라는 아주 좋은 곳이 있더라고…ㅎㅎ
암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인데 사생활을 잘 남기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남긴 에세이라서 아주 귀한 작품이다.
하루키는 30대에 들어서야 러너로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와세다 대학까지 졸업한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당연히 대학 시절부터 작품을 꾸준히 써서 유명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일단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는 게 놀라웠고, 졸업 후엔 가게를 경영하며 20대 시절을 보낸 것도 또 놀라웠다.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29살의 어느 봄날 동네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때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다만 음식점을 하고 있어서, 밤 12시까지 영업 후 정리를 하면 새벽 3시. 이 때부터 동이 틀 때까지 원고를 집필해 처음으로 낸 소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였다고. 이 소설로 처음 등단하고 신인상까지 받았으니 신참 소설가로서는 꽤 화려한 데뷔를 한 셈인데, 자신이 글쓰기는 타고나지 않았고 뭐든 오랜 시간을 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그것에 대해 깨우친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하루키는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 그가 생각한 ‘글쓰기에 재주있는 사람’은 ‘천재’에 가깝게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하루키는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전업 소설가를 하기 위해 꽤 잘 되고 있던 가게를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저체중이었던 몸에 살이 불어나고, 하루 담배 60개비까지(!) 피는 등 꼴초가 되면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본래부터 남들과 경쟁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묵묵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고 자기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달리기’를 선택했다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스포츠라, 매일 10km씩 뛰며 균형잡힌 건강한 몸이 되었다.
그는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좋지 않은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인즉슨, 자신은 살이 잘 찌는 편이라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지만 아내는 살이 잘 찌지 않아 운동을 잘 하지 않으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근육량이 빠지고 체력이 약해졌다고. 누군가에겐 날 때부터 주어진 능력이, 누군가에겐 노력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게 본래부터 없는 사람은 그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더 잘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참 긍정적인 발상이다.)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
하루키는 아마추어 러너다. 마라톤, 트라이애슬론에도 참가했으나 우수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일들에 도전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 도전들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니 ‘달리기’를 주제로 책도 쓰고, 자신의 묘비에 “소설가이자 러너” 라고 쓰기까지 했겠지!
경기에서 순위권에 든다든가, 특정 경쟁자를 이겼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는 게 아니라, 그냥 “경기에 참여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그의 말은 나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성과주의에 빠진 채로 살아왔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그 자체로 즐긴다기보단, 그 행위가 나에게 가져올 유익을 생각했다. 여기서 이기고자 했고, 이기거나 성취를 한 뒤에 내가 얻을 이익을 생각하는 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성적, 장학금(상), 누군가의 인정, 돈, 이겼다는 사실, 나아진 외모 등. 나뿐만이 아니라 성과중심주의인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 증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하루키는 이런 게 전혀 없어도 달리는 것 그 자체가 즐겁고,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고 있다. 달린다고 해서 주어지는 게 따로 없고 본인이 재능도 없는데도 꾸준히 마라톤에 참여하고 책까지 쓴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내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잘 한 것이다. 안 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물론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러웠고 정신적으로 물속에 푹 가라앉아 버릴 것 같은 측면도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고통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스포츠에 있어서는 전제 조건과 같은 것이다.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할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 다다를 수도 있다.
- p.255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 p.257
마지막 구절은 앞으로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될 것이다.
결과가 좋아야 그 과정까지 좋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하루키에게만큼은, 그리고 나에게는 아니다. 적용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삽질을 했어도, 그 행위 자체가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인 것이다. 굳이 효율을 찾을 필요가 없다. 떄로는 효율 나쁘게 삽질하고 실패한 것들에서 가치있는 것을 찾는 법이니까.
이 책이 나의 갓생병을 고치는 데에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효율이 좋지 않은 하루를 보냈더라도, 더 이상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으리. 오늘의 삽질이 내일의 거름이 될 수 있는 걸? 😊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이 작품에 대단히 만족하고 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읽으면서 즐거웠기 때문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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