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s Ever, Data Chronicles
<행복의 나락>, 피츠제럴드가 전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믿는 것 본문
F.스콧 피츠제럴드는 책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삶의 찬란한 모습’을 아주 빛나게 묘사하는 재주를 갖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삶의 비극적인 모습’도 아주 초라하고 잔인하게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 그 재주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가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참고로, 이 재주는 ‘상실’을 주제로 쓴 ‘노르웨이의 숲’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우 부러워하는 재주이기도 하다.)
이 책 <행복의 나락>은 재주꾼 피츠제럴드가 쓴 여러 단편들을 모아 녹색광선에서 낸 책이다. 책을 읽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남자는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기 위해 돈을 쫓지만, 그래서 한때는 그 여자를 얻기도 하지만, 결국은 얻지 못하는 식의 전개로 구성되어 있다. 즉,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집인데, 특별하게도 여기엔 ‘상실’이 얽혀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역할 수 없는 상실인, “젊음”의 상실이다.
행복의 나락
- F.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녹색광선(2021)
이 책의 주인공들은 남자와 여자 모두 (특히 여자가) “젊음”의 가치가 최고조일 때 만나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젊음”이라는 가치가 상실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환멸을 그린다.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환상과,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환멸은 어찌보면 같은 맥락인 것이다.
사실 F.스콧 피츠제럴드는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린다는 편견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가 삶의 표면을 눈부시게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쫓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머리를 박게 되어 있다.
- 책 p.215
피츠제럴드가 이러한 환상과 환멸을 들춰내는 이야기를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어찌보면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여자(젊음), 부, 명예라는 가치를 쫓았고, 한번 손에 넣어도 보았고, 이를 잃고 구렁텅이에 빠져보는 삶을 살았으니까.
사실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크게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없었다. 피츠제럴드의 책은 감성을 자극한다기보단 불편한 현실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책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번 책에서 느낀 게 있다면, 많은 것들은 사라진다는 것. 특히 물질주의적인 우리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외모, 부, 명예와 같이 “보여지는” 가치들은 결국 “시간”이라는 절대신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욱 변하지 않는 것, 즉 “본질적인” 가치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나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내 스스로도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의 ‘본질’을 생각할 것이며,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마찬가지다.
ps. 내 인생책,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떠올랐다. 주디가 존 스미스 씨에게 편지를 쓰며 별명을 붙일 때
- 아저씨는 돈이 많으십니다. → 언젠간 파산할수도 있죠. 월 스트리트의 부자들도 파산을 한다니까요.
- 아저씨는 여자아이를 싫어하십니다. → 언젠간 바뀔 수도 있죠.
- 아저씨는 키가 크십니다. → 하지만 아저씨가 키가 크다는 건 영원할 거예요!
하고 ‘키다리 아저씨’ 라는 별명을 짓게 되었다고. 주디는 정말 본질적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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