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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통해 바라보는 멋진 세계, <해변의 카프카(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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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통해 바라보는 멋진 세계, <해변의 카프카(상)>

Everly. 2023. 12. 1. 06:12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로 처음 하루키를 만났는데,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하루키는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그 중에서도 이 ‘해변의 카프카’가 21세기의 세계문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소설이라고 하여 읽게 되었다.

 

책 제목부터가 ‘해변의 카프카’ 이기 때문에 카프카가 해변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이름조차 누군지 제대로 알 수 없는 15세 소년의 가출 일기 느낌이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그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까마귀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출을 서서히 준비하고,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다카마쓰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명인 ‘카프카’ 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사실 그도 왜 자기 이름을 카프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더 신비한 것은 다카마쓰의 고무라 도서관에서 만난 도서관장 사에키 씨가 열아홉 살에 대히트를 친 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의 이름이 ‘해변의 카프카’ 이며, 오갈 곳 없는 카프카를 위해 이전에 사에키 씨의 약혼자가 살았던 고무라 도서관의 안 쓰는 방을 내주었는데 그 방에 걸려있던 사진이 어떤 소년이 해변을 걷고 있는 사진이었다. 전혀 인과관계가 느껴지지 않는 사건들인데도 비슷한 느낌으로 일어나서 무언가 운명 같은 느낌도 들게 한다.

 

해변의 카프카 (상)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사(2003)

2023.11.11 완독

 

체코어로 ‘카프카’는 ‘까마귀’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무의식’의 강력한 힘을 풀어내는 소설이다. 카프카는 자신 안의 까마귀 소년과 이야기하면서 까마귀 소년이 사실 자신 본연의 목소리이기에 자신을 ‘카프카(까마귀)’ 라고 소개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카프카는 열다섯의 나이에 가출하는데, 그 이유를 자신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당연히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와 누나는 어렸을 때 그를 버리고 이혼해버렸고, 단둘이서 사는 아버지는 소름 끼치는 예언(오이디푸스의 예언)을 해 아버지를 싫어하는 마음에 가출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출을 하고 나서 무엇인가를 할 계획이 전혀 없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역시 이 또한 그의 무의식이 그를 이끈 것이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나카타도 카프카의 경우처럼 무의식이 그를 이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중간에 그 둘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억을 잃고 쓰러지는 동일한 경험을 한다. 

 

읽으면서 ‘무의식’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카프카와 나카타의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이끌려 가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렇고, 인간이란 원래 의식적으로 이성적인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 무의식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케팅조차도 인간의 무의식을 건드려 사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광고 기법 중에 0.1초 정도로 짧게 상품 사진을 여러 장 끼워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상품을 기억한다고 한다.)

 


 

인생이란 크고 작은 선택들을 지속해나가는 과정이다. 당연히 모두들 처음 사는 인생이기에 처음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인 카프카처럼 어릴수록, 선택의 경험이 적은 미성숙한 존재다.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무의식이다. 나도 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서 결정하는 경우가 생각해 보면 꽤 많았던 것 같다.

 

 

카프카는 고무라 도서관에서 만난 직원 오시마 씨의 도움으로, 홀로 숲속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주변의 깊은 숲과 밤하늘의 별을 보며 주인공은 자신이 우주에서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15세 소년이기에 별이 있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아챈 만큼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큰 존재인 자연(ex. 숲, 별)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중학생 땐 그런 생각을 했던 듯..?ㅋ) 그 때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주인공이 느끼는 심정이 조금은 공감이 된다. 중학생 때 난 학교 근처의 작은 뒷산에서 한 나무를 바라보며 ‘이 나무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알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왜 그랬을까? 이 나무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았기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 세상에 있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작가 하루키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카프카 군은 나 자신이며 독자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고 말했다. 보통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20대~30대 남성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특별하게도 15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다고. 그 이유는 “그들이 아직은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존재이며, 그들의 정신상태가 어떤 방향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다는 데 주목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미성숙한 존재가, 광활하고 멋진 세계 속에서, 어떻게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이 그와 같은 눈으로 이 작품을 보아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소망스러운 일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처럼(?) 처음 맞이하는 환경에 대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 나름의 감정이입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감정이입이 그닥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27살이지만 아직도 처음 해보는 것들, 처음 마주하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에선 나는 어린아이가 되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아직도 모르는 분야가 많다는 건, 어쩌면 즐거운 경험일지도!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 p.198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오시마 씨가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를 들으며 했던 말이다. 미성숙한 사람들에겐 뭔가 호감이 느껴지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미성숙하다는 게 이런 측면에선 그리 나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건, 아무것도 몰랐던 때보다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반증이니까.

 

그리고 주인공 카프카와 나카타는 둘 다 가출을 하게 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간다는, 자신의 인생에서 전례 없는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난 더더욱 책을 읽으면서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됐다.

 


 

이번 소설은 읽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거의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도 해서 좀 늦어졌던 것도 있고, 이 책의 내용이 길어서이기도 한데, 읽으면서 불가사의한 부분들이 많아서 그 무의식의 흐름을 잘 짚어 가며 읽어야 했기 때문의 이유가 컸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삶의 단면을 명확하게 묘사해서 보여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묘사가 구체적이라서 마치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무의식’ 이라는 소재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신비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세상은 멋진 곳이라니까. 얼른 (하)권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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